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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연 / 스님, 조계종 총무원 전 문화부장
이때 승만이 부처님께 말씀드리되, “제가 이제 다시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을 받들어 조복(調伏)의 대원(大願)이 진실하고 다름이 없음을 설(說)하려 합니다” 하였다. 이에 부처님께서 승만에게 “마음대로 하여라. 네가 설하는 것을 허락 하느니라.” 하셨다. 승만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보살의 항사(恒沙)와 같은 모든 원은 다 하나의 대원(一大願)에 들어가나니 이른바 섭수정법(攝受正法)이라고 합니다. 정법을 섭수 한다는 것은 진실로 큰 원입니다……”
이렇게 시작되는 이 섭수정법장은 이미 삼대원을 발원했던 승만 부인이 한 걸음 더 나아가 부처님의 위신력을 입어 항사의 모래와 같이 수많은 모든 원이 그 안에 드는 하나의 대원, 즉 섭수정법의 대원을 설하는 것으로, 이 경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장은 정법을 섭수하는 큰 이익과 복덕과 과보를 설하고, 이 섭수정법을 지녀 중생을 교화할 것을 전하고 있다.
승만 부인이 앞의 십대수(十大受)나 삼대원(三大願)에서와는 달리,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부족함을 느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서 앞에서 이야기한 세 가지 대원인 조복의 큰 원이 부처님께서 설하신 본래의 원과 동일(同一)하여 다르지 않은 진실임을 설하려 한 것이다.
승만 부인은 부처님께서 설하라고 허락하시자 “칠지 이전(七地以前) 보살의 항하의 모래같이 수많은 모든 원(願)이 다 팔지 이상(八地以上) 보살의 한생각의 큰 원에 다 들어가는데, 그 큰 원을 섭수정법이라고 합니다. 정법을 섭수한다는 것은 진실로 대원이 되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부처님께서 ‘선재선재라’라 칭찬하시고 “그 지혜와 방편이 매우 깊고 미묘하니, 그대는 이미 장야(長夜: 긴 미혹의 세계)에 모든 선(善)의 근본이 되는 지혜를 심어왔구나.” 하셨다.
승만 부인이 불법에 귀의한 지 아직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 지혜와 방편이 매우 깊고 미묘한 까닭은 우연이 아닌 이미 과거 전세에서부터 모든 선근을 심어왔던 좋은 결과라고 칭찬하신 것이다. 또 부처님께서는 “미래의 중생들도 오랜 세월에 걸쳐 선근을 심는다면 섭수정법을 잘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시며 “과거 부처님도 이미 설하셨고, 현재 부처님도 설하고 계시며, 미래 부처님도 설하실 것이며, 나 역시 무상보리를 증득하고 또한 항상 설하고 있는 것이 이 섭수정법이다.
이 섭수정법의 공덕은 끝이 없으며, 그 법을 설하시는 여래의 지혜와 변재(辯才)도 또한 끝이 없다. 왜냐하면 이 섭수정법에는 크나큰 공덕과 커다란 이익이 있기 때문이니라.”라고 하신다. 이는 승만의 섭수정법의 이해에 덧붙여 정법을 섭수하는 의미를 밝히며, 올바른 법을 거두어들이는 공덕도 크지만 바른 법을 듣고 믿음을 일으킬 인연으로 선근 심기를 역설하신 것이다.
승만 부인은 다시 부처님께 “제가 마땅히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서 다시 섭수정법의 넓고도 큰 뜻을 연설하겠습니다.”라고 허락을 받고 “섭수정법의 뜻이 넓고도 크다는 것은 곧 무량(無量)이니, 일체의 불법을 얻어 8만 4천의 법문을 포섭하는 까닭입니다. 마치 겁(劫)이 처음 이루어질 때 널리 큰 구름을 일으켜 갖가지 빛깔의 비와 가지가지 보배를 뿌리듯이, 올바른 진리를 거두어들이는 일도 한량없는 복보(福報)와 한량없는 선근의 비를 내리는 것입니다.”라고 하여 섭수정법의 광대한 뜻을 밝히면서 정법도 한 큰 원이며 한량없는 복덕과 선근이 이 섭수정법에 있으며, 이것이야말로 8만 4천의 모든 법문을 포섭하는 이유가 된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승만 부인이 말하는 정법(正法)이란 바로 일승법(一乘法)이며 대승(大乘)으로, 부처님의 여러 가지 가르침은 이 일승법(一乘法)에 귀의케 하기 위한 선교방편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또 대지(大地)는 바다와 산과 초목과 중생이라는 네 가지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것과 같이 섭수정법하는 선남자 선여인도 대지를 건립하고 네 가지 무거운 책임을 능히 감당함이 저 대지와 같습니다. 그것은 선지식을 여의고 진리가 아닌 것을 듣는 중생에게는 인·천(人·天)의 선근으로써 이것을 성숙시키고, 성문(聲聞)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성문승을, 연각(緣覺)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연각승을, 대승(大乘)을 구하는 자에게는 대승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네 가지 무거운 책임을 능히 감당하는 대승보살은 널리 중생들을 위해 청하지 않는 벗이 되어 대비(大悲)로써 중생을 편안케 하고 위로하며, 불쌍히 여겨 세상에서 진리의 어머니가 되는 것입니다.”라고 하여 섭수정법하는 대승보살은 네 가지 무거운 책임을 스스로 짊어진다고 하였다.
이렇게 상대방의 근기에 따라 그를 교화하는 대기설법으로 뭇중생을 가르치는 것이 대승보살의 책임이며, 감당하여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책임을 질 수 있는 대승보살은 진실로 여러 중생의 청하지 않는 벗〔不請之友〕이 되어 중생을 교화해야 함을 승만 부인은 강조하고 있다. ‘청하지 않는 벗’이란 언제 어떠한 위급함과 어려움이 있을 때 구원을 청하지 않아도 와서 도와주는 친구이며, 그것이 바로 보살의 실천하는 자비의 행이며, 바로 정법을 섭수하는 대승보살이 행하여야 할 바다.
승만 부인은 다시 “세존이시여, 섭수정법은 바라밀과 다르지 않고, 바라밀은 섭수정법과도 다르지 않으니, 섭수정법이 곧 바라밀입니다. 왜냐하면 정법을 섭수하는 선남자 선여인은 마땅히 보시(布施)로써 성숙시킬 사람에게는 보시로써 성숙시키려 합니다. 그렇게 하여 성숙한 중생은 정법을 건립하는데, 이것을 보시바라밀이라고 합니다.”라며 대승보살이 실천해야 할 수행의 덕목인 육바라밀을 낱낱이 설명하고 있다. 섭수정법과 바라밀이 둘이 아닌 하나의 보살행이라는 것이다. 승만 부인은 다시 부처님께 “섭수정법과 섭수정법 하는 사람은 다르지 않습니다.”라고 하였다.
섭수정법은 사람이 하는 것이고, 섭수정법이란 그것을 행하는 사람을 빼놓고는 존재할 수 없는 일이므로 법과 그 법을 실천하는 사람이 둘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섭수정법을 하기 위해서는 몸과 목숨과 재산까지도 다 버려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세 가지를 버려야 하는 이유로써 승만 부인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섭수정법을 하기 위해서 몸을 버리는 것은 제일 귀히 여기는 몸에 대해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으로서, 생사와 후제 곧 현세에서 내세에 걸쳐서 몸에 집착이 없으니 늙고 병들고 죽음을 떠나 여래의 법신, 즉 깨달음을 얻게 되고, 죽음을 떠나 심심(甚深)한 불법에 통달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며, 재산에 애착을 두지 않음으로써 모든 중생에게서 수승한 공양을 받는 행복을 얻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세 가지를 버리는 선남자 선여인은 정법을 섭수하여 항상 부처님께 수기를 받으며 일체중생의 우러름을 받는다고 한다. 또 이어서 “세존이시여 선남자 선여인이 정법을 섭수한다는 것은 법이 멸하려 할 때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가 당파를 형성하여 다투고 파괴하고 흩어지더라도, 아첨하지 않고, 속이지 않고, 거짓된 짓을 하지 아니하고, 올바른 진리를 즐거워하고, 바른 법을 섭수하여 진리의 벗 가운데로 들어가니, 이렇게 정법의 벗들 사이에 들어가 사는 사람은 반드시 모든 부처님의 수기를 받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승만 부인은 끝으로 다시 “세존이시여 저는 섭수정법에 이와 같은 큰 힘이 있음을 봅니다.” 라고 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그 크나큰 정진력(精進力)에 대해 기쁜 마음으로 “그렇다 승만이여. 그대가 설한 바와 같다. 섭수정법의 대정진력은 마치 힘센 장사가 몸을 조금만 건드려도 큰 고통을 일으키는 것과 같이 정법은 조금만 섭수하여도 마구니로 하여금 고뇌(苦惱)하게 하느니라.”고 하셨다. 이는 정법을 섭수하는 것의 대단함을 설명하시며 “또 우왕(牛王)과도 같으니 우왕은 다른 소에 비교가 안 되듯이 대승으로써 정법을 조금만 섭수하여도 이승(이乘: 성문, 연각)의 선근보다 매우 훌륭하고 넓고 큰 것과 같다.”라고 하시어 대승의 뛰어남을 대역사(大力士)와 우왕과 수미산과도 같이 선근이 뛰어나고 훌륭한 것임을 설명하셨다.
또한 승만 부인이 이해하고 있는 섭수정법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섭수정법이야말로 크나큰 공덕과 이익이 있는 것이라고 함으로써 승만 부인의 설함이 옳다고 인정해주셨다. 그리고 그 법의 대정진력을 칭찬하고 대승적으로 몸과 목숨, 재산을 버려 정법을 섭수하는 큰 이익과 복덕과 과보를 설하고, 섭수정법을 지녀 중생을 교화할 것을 전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올바른 진리를 거두어들이는(섭수정법) 것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다시 한번 정리하고 실천 수행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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