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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여성재가불자의 위상
백경임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가정교육과 교수)
초기불교에서 여성재가불자가 차지했던 위상을 알아보기 위하여 그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인도의 일반여성, 출가여성[비구니]의 위상과 함께 비교 검토해야 한다. 이와 같은 작업은 상당히 폭 넓은 연구가 요구되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단지 초기경전을 통해서 간략히 그 위상을 더듬어 보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그 당시 인도사회에서 여성은 남성과 동물 사이의 중간정도에 위치한 존재로서, 여성과 남성은 류(類)에 있어서는 같지만 신분에 있어서는 다른 존재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불교 교단에서는 재가신자의 경우 여성불자는 남성불자에 비해 차별대우를 받지는 않았다.
최초의 재가불자가 탄생될 때에도 남성(우바새)과 여성(우바이)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이 받아들여졌다. 부처님의 6번째 제자 비구인 야사(Yasa)의 부모와 그의 출가 전 처가 불타의 설법을 듣고 불퇴전의 신앙심을 갖게 되어 최초의 재가신자가 된다.
그때 1명의 우바새와 2명의 우바이가 교단에 신도로 구성되는데 성(性)이 문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승가에 여성출가가 그토록 어려웠던 점과 비교된다. 사실 재가불자들이 실천해야 할 수행내용이 주로 “믿음, 지계, 보시”였기 때문에 우바이와 우바새를 구별해서 가르쳐야할 필요가 없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초기불교에서 여성불자는 남성불자와 같은 대접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불자가 되는 절차에서부터, 불자로서의 수행방법에 이르기까지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차별을 당해야 하는 규정은 볼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여성불자들이 불사(佛事)에 참여했고, 부처님과 큰 제자들의 법회와 수행자리에 참석하기도 하면서, 남성불자들 뿐만 아니라, 심지어 출가자와 같은 수준의 수행의 결과를 얻었다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뛰어난 우바이 30명을 거론하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도를 깨달은 우바이, 지혜가 많은 우바이, 좌선하기를 좋아하는 우바이, 설법을 잘하는 우바이, 경전의 뜻을 잘 연설하는 우바이, 용맹정진을 잘하는 우바이가 있는가 하면, 인욕을 잘하는 우바이, 공삼매, 무상삼매, 무원삼매 등 삼매를 잘 닦는 우바이 계율을 잘 지니는 우바이, 게송을 잘 짓는 우바이, 법을 많이 듣고 널리 알리는 우바이, 깨달음을 얻은 우바이들이, 한 사람 한 사람 거명이 되고 있다. 이것은 여성 재가신자들이, 믿음, 계율, 보시뿐 아니라 법문을 듣거나, 선정을 닦고, 지혜를 얻은 수준이 수행자로서 남성 재가자에 비해 뒤떨어지는 바가 없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여러 우바이들 가운데서 지혜 제일로 언급된 쿠줏타라는 특별히 칭송 받는 우바이로 꼽혔다.
쿠줏타라 우바이는 꼬삼비국의 사마와띠왕비의 꽃 시중을 드는 노비였다. 그녀는 꽃가게에서 부처님을 친견하고 법을 듣는 즉시 깨달음을 얻어 성자의 반열인 예류(預流)과에 들었다. 그리고 사마와띠왕비와 5백 궁녀들 앞에서 불법을 설하였다.
왕비와 궁녀들도 모두 깨달음을 얻어 성자가 되었다. 왕비와 궁녀들은 쿠줏타라를 스승으로 받들고 수행하였다. 그녀는 설법을 잘하는 법사로서도 크게 이름을 얻는다. 김재영, 붓다운동으로서의 초기불교시대 전법활동, 노비로서 왕비에게까지 설법하고 제도하였다는 것은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여성을 비하하는 관념이 지배적인 그 당시 인도사회에서 더구나 노비의 신분을 가진 여성에게 법사의 자격을 준다는 것은 사성평등(四姓平等)의 불교 가르침이 아니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불법을 만나 수행을 하고 깨달음과 자유를 얻은 여성재가불자가 남성 재가자들이나 출가 수행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수였다고 하더라도 완전히 남성지배중심의 시대에 그 역할은 더욱 가치롭다고 하겠다.
불타의 재가여성에 대한 가르침 가운데에도 여성비하적인 내용이 많이 있지만 그것은 한가정의 딸이나 아내, 며느리로서의 도리에 대한 가르침이 대부분이다. 그 시대 그 사회에 적응시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가르침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성 재가불자로서 불법의 영역 안에 들어오면 그 차별을 찾아 볼 수 없다. 불법의 가르침 자체가 기본적으로 양성에게 평등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타의 가르침은 그 당시 여성 불자에게 크게 영향을 주었을 것이고, 그 가르침을 받은 남성들도 여성에 대한 시각이 변하였을 것이다. 초기 불교시대에 인도여성의 지위에 변화가 있었다는 지적에는 이처럼 불법의 가르침을 받은 재가불자들의 의식변화가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6. 맺는말
여성 재가불자로서 진정한 수행생활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되짚어 보기 위해, 초기 불교시대 재가불자의 수행생활을 가급적 단순한 모습으로 살펴 그 근원적인 의미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첫째, 재가불자가 되기 위하여는 수계식을 거쳐 삼보에 귀의하고 지계의 수행생활이 지켜져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둘째, 재가불자들의 수행생활은 “믿음”을 가지고 “계”를 실천하고 “보시”를 행하는 삶이 권장되었는데, 그 수행의 목적은 현세와 후세의 안락을 추구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셋째, 깨달음은 출가수행자가 목표로 하기에 보다 적합할 뿐, 재가자 역시 그 역량에 따라 여성이든 남성이든 상관없이 깨달음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넷째, 불교교단에서 불자가 되는 절차에서 수행방법에 이르기까지 여성불자와 남성불자 사이에 차별을 찾아볼 수 없었다. 남성중심의 그 당시 인도사회에서 몇몇 여성재가불자들의 모습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대단히 성숙한 모습들을 보여준다. 여성재가불자들의 보편적인 모습은 아닐지라도 불교의 가르침이 반영된 모습으로 그 위상은 높게 인정된다.
위의 내용들은 오늘날 여성 재가불자들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도 무리가 없을 뿐 아니라 현재의 수행생활이 초기불교의 그 의미에서 많이 벗어나 있음을 알게 한다.
붓다는 출가제자에겐 깨달음을 목표로 치열한 삶을 강조한 반면 재가불자에겐 보다 너그러웠으며 선행과 공덕의 삶을 요구하셨다.
그리고 불교의 최고목표인 깨달음에 대해 여성재가불자에게도 그 능력을 인정함으로써 기본적으로 출가자와 재가자 또 여성과 남성을 차별하지 않았다. 단지 여성재가불자로서 처한 환경과 스스로의 역량에 따라 금생의 수행목표가 정해질 뿐이다. 언젠가 본인이 성취할 “깨달음”을 향해 현재 어떠한 “수행과 삶”을 영위할지는 온전히 여성 불자 스스로가 결정하고 행할 문제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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