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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세미나] [제1차 세미나] 여성불자의 정체성에 관한 소고   2004-09-20 (월) 10:10
불교여성개…   9,339

< 목 차 > - 시작하는 말 1. 문헌중심의 연역적 추론 2. 경험중심의 귀납적 추론 - 마무리하는 말 * 시작하는 말 불교여성개발원의 창립 2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발제를 맡은 것이 본인에게 영광으로 생각되는 한편, 그동안 개발원이 추진하던 여러 가지 사업에 깊이 동참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공개적인 자기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불교여성개발원은 단지 불교계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 큰 기여가 있을 것을 기대하며 그 출범에 박수를 보낸 지가 벌써 2년이 되었다. 그동안 원장님 이하 실무자들의 노고를 다 듣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이 되는 바이다.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하여 오늘같은 자리가 마련된 것으로 생각하며, 틀림없이 기대하는 성과가 있으리라 믿으면서 미력이나마 진지한 논의를 하고 싶다. 금번의 발제를 기획할 때 실무자 여러분과도 상의한 바와 같이, 본 발표자는 경전위주의 여성불교에 관한 주장들을 더 이상 흥미롭게 생각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누군가 여성관련 경전을 문헌고증 방식으로 연구해볼 필요성은 있겠지만, 그 밖에 지금까지 여러 차례 소개된 원론적인 내용들에다 논의의 큰 비중을 둘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불교여성개발원이 여성불자를 위시해서 전 불교계의 교육과 향상을 위한 구체적인 사업목표를 가지고 있으므로, 거기에 필요한 실질적인 궁리와 논의가 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현재 한국의 여성불자들은 어떤 생각과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가능한 깊이 알아내서 그에 맞는 여성개발원의 사업방향과 대책을 세워야 한다. 경전의 변함없는 원론으로부터 현실을 유추하는 연역적 방법이 아니라, 각기 다양하고 무상한 현실로부터 근원을 유추하는 귀납적 방법이 더 유용할 것으로 생각한다. 필자가 평소 불교학 방법론으로서 그것이 오늘날 더 필요하다고 보아온 입장에서도 역시 그러하다. 그러므로 본론은, 논리적 순서상 우선 경전속에 보이는 여성관련 내용의 핵심문제를 요약하고, 다음에 장차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과제들을 정리해보기로 한다. 과문한 탓인지 애석하게도 아직은 그런 과제들이 보다 실제적인 접근방법으로 다루어진 결과물을 얻어 볼 수가 없다. 본고는 이번에 필자가 참고로 여성불자들이 가지는 자기 인식을 정체성 탐구의 중요한 부분으로 여겨 급하게 실시한 설문조사의 내용을 포함한다. 1. 문헌중심의 연역적 추론 불교경전을 읽을 때는, 다른 전통에서와 마찬가지로, 여성에 대한 불교인의 인식이나 태도가 그 당시의 문화적 사회적 제도적 상황 등에 반응하며 형성되었을 것임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본다. 특히 문헌들 가운데서 일관성이 없어 보이는 양가적(ambivalent) 표현들을 접하게 되더라도 그것을 섣불리 하나로 묶으려는 원리적 환원이나 정당화를 촉구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그 목소리의 다양함을 통해서 당시 교단 안팎의 사회적ㆍ지적 역동관계와 교단 구성원들 상호간에 있었던 여러 종류의 염려들을 이해하도록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초기불교에서의 여성에 관한 인식과 태도가 다양한 점에 대해서, A. Spon berg 는 다음과 같이 네 가지 유형으로 정리한 바가 있다. 첫째, 모두에게 개방적 포용적인 해탈론( 해탈주의적 포용성: soteriolog-ical inclusiveness)으로서 인도 종래의 바라문교나 카스트 제도에서와 같은 계급결정론이나 인간차별 뿐만 아니라 여성차별을 지양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태어남에 따라 바라문인 것은 아니다. 태어남에 따라 非바라문인 것도 아니다. 행위에 따라 바라문이 되고 행위에 따라 非바라문이 되기도 한다. 四姓의 누구라도 도덕적 인과율을 면할 수는 없다. 바라문이라도 악업에 의해서는 악취(惡趣)에 나고 수드라도 선업(善業)에 의해서는 선취(善趣)에 난다. 둘째로는 제도적인 남성중심주의(institutional Androcentrism)가 있다. 붓다가 살아계신 동안에는 그의 위의(威儀)로써 교단에 별다른 문제가 없이 운영되었겠지만, 그의 입멸 후 제자들은 각별히 교단존속을 위한 계율의 필요성을 인식하였을 것이다. 당시의 염려 가운데 특히 여성 관련내용으로서 아래와 같은 여성 출가 간청의 이야기가 잘 알려져 있다. 아난다: 만약 여성이 여래의 가르침을 따르고 계율을 준수하여 출가하면 깨달음에 이를 수 있습니까? 붓다: 아난다여, 여성이라 하여도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아난다: 여성도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고 하신다면, 존사(尊師)의 이모이며 존사를 양육하신 분을 어떻게든 출가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붓다: 여성출가자가 여덟 가지 공경의 규칙(八敬戒法)을 잘 지킨다는 조건 아래 여성의 출가를 허락한다. 팔경계를 세움으로써 저수지의 범람을 막는 제방처럼 교단을 지킬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팔경법(八敬法)이란 * 비록 100세의 비구니라 할지라도 처음으로 수계한 연소비구를 보거든 마땅히 일어나 예를 갖추도록 할 것. * 비구니로서는 비구를 꾸짖거나 또는 파계, 破見, 破威儀 등에 대해서 비방하지 말 것. * 비구니로서는 비구의 죄를 들거나 또는 그의 覓罪, 設戒, 自恣 등을 막지 말 것. * 식차마나가 육법(六法)을 이미 배웠거든 비구로부터 비구니계를 걸수(乞受)할 것. * 비구니로서 僧殘罪를 범하였으면 마땅히 二部僧 중에서 반 달 동안 마나타를 행할 것. * 비구니로서는 반 달마다 비구승중에서 가르쳐 줄 사람을 구할 것. * 비구니로서는 비구가 없는 곳에서 하안거를 하지 말 것. * 비구니로서는 하안거를 해제하거든 비구승중에 가서 見聞疑 三事에 대한 自恣를 도울 사람을 구해야 할 것. 어떻게 읽어도 명백하게 남성출가자 중심의 권위체계를 세우고 여성출가자는 그 아래 예속되도록 하는 내용이라고 해서 오랫동안 논란을 일으키는 부분이다. 이 외에 비구의 계율은 250조인 것에 비하여 비구니의 계율은 348조라는 것에 관련해서, 여성 열등성의 증거인 듯 곡해하는 관점도 있고, 더욱이 붓다는 당시 여성출가자를 허락하여 준 탓으로 불법(佛法)의 존속이 1000년에서 500년이 감하는 결과가 오리라고 말한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그 진의를 파악하려면 당시 인도사회 혹은 문헌이 편찬된 후대 사회의 여성관의 특성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겠다. 그것은 여성의 능력 여부와 별도로 당시의 사회문화적 역동 속에서 교단을 지키려는 일종의 타협책 이었으리라고 보여진다. 문헌적 고증을 거쳐 위의 내용들 가운데 어느 부분은 붓다의 진설이 아니라고 보는 견해들도 이미 알려져 있다. A.Sponberg가 분류한 세 번째 유형은, 금욕적 여성혐오주의(ascetic Misogyny)이다. 경전의 도처에 여성을 혐오하고 멀리해야 할 이유들이 나열되어 있다. 여성 자신이 성불할 수 있는지 여부보다도 여성이라는 존재자체가 남성의 수행에 장애가 된다는 점만을 강조하는 것이다. 아난다: 존사여, 여자는 왜 공개석상에 출석할 수 없습니까? 왜 직업에 종사하지 않습니까? 왜 직업으로 생계를 꾸려가지 않습니까? 붓다: 아난다여, 여자는 성내기 쉽다, 여자는 질투심이 많다, 여자는 물건을 아까워한다. 여자는 어리석다. 아난다여, 이런 연고로 여자는 공개석상에 나갈 수 없고 직업을 가질 수 없고 생계를 꾸릴 수 없느니라. 그같은 여성혐오주의는 남성 수행자들이 각종 욕망과 갈애와 같은 번뇌로부터 자기를 방어하고자 하는 기제로서 극단적이고 건강하지 못한 심리투사(projection)의 일종일 것이다. 끝으로, Sponberg의 분류에 의하면 해탈론적 양성주의(Soteriological Androgyny)가 있다. 양성(androgyny)이란 단지 이중적 성(sexual dual-ism)의 외양으로서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차이성은 궁극적인 실제도 아니라고 보며 더 나아가서는, 오직 해탈을 이루는 수단으로서 잠재적 힘을 가진 것으로 인식된다. 이는 불교 교리발달사 안에서도 비교적 후대문헌(6-7세기경)에 이르러서야 관심이 주어졌고 초기불교를 벗어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 의미는 상당히 혁신적이다. 즉, 종래의 생물학적인 여성이나 남성 혹은 심리적인 여성스러움과 남성스러움이 아니라, 문화적 사회적으로 정의된 성(gender)이 해탈에 관련되는 바를 재평가하고 재발견한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성(femininity)과 남성성(masculinity)은 모든 인류에 변증법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양태(modes)로서, 상호보완적이고 동등하게 필수적인 이상적 양성통합(the ideal state, a state of androgynous integration)으로 보여진다. 종래의 성 인식에 비하면 파격적인 이 관점에 혹자의 이의도 있을 수 있겠지만, 주로 밀교경전 계통에서의 여성관이 이에 속한다. 불교발달사에서 대승불교의 연원은 흔히 재가불교운동에서 발전한 것으로 보는데, 초기에는 보살이라는 명칭에서 재가자와 출가자의 구별이 없었던 것 같고 더욱이 여성과 남성의 차별이 없는 표현도 나타나고 있다. 즉, 젊은 선남자ㆍ선여인이 법사가 되어 한 달의 8일ㆍ14일ㆍ15일에 법을 설할 때 공덕을 얻는 것 또는 분별을 해서는 안된다. 이 선남자ㆍ선여인은 여래(如來)의 방에 들어가 여래의 옷을 입고 여래의 자리에 앉아 사중(四衆)을 위해 이 경을 널리 설할 것이다. 라고 하는 대승경전의 내용들은 이전의 불교에서는 생각지도 못할 일이다. 그러나 위에서와 같이 예외적 표현이 있기는 하지만, 대승불교에서도 여성의 능력과 이미지는 다양하게 나타난다. 첫째, 여인성불 불가설(女人成佛 不可說)이다. 여성의 몸으로는 현생에 성불하여 불국토에 들어가는 일이 불가능한 것으로 명시되어 있다. 그 이유로서 흔히 ‘여인오장설’(女人五障說)을 드는데, 여성은 전륜성왕ㆍ제석천ㆍ마왕ㆍ범천ㆍ불신(佛身)의 다섯 가지가 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중에 불신이 못되는 이유로서 붓다의 고유한 32가지 상호의 제 10상인 ‘馬陰藏相’(남성기의 감추어진 형상)을 여성은 가질 수 없기 때문이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나, Diana Y. Paul의 이색적인 해석도 있다. 즉, 붓다의 남성 상징이 감추어진 형상을 지닌다는 것은 붓다가 되면 더 이상 성(sexuality)과는 무관해진(asexual) 경지에 있음을 의미하며, 남성다움(maleness)이 불필요, 부적절해진 까닭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여성이어서 불신(佛身)을 이루지 못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해질 것이다. 대승불교의 여성인식의 두 번째 주류는, 변성남자 성불설(變成男子 成佛說)이다. 여성이 금생(今生)에 성불을 못할 정도로 저열(低劣)한 것은 아니지만, 조건이 있는 바, 우선 남성의 몸으로 바꾸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大無量壽經>의 법장보살 서원이나 <大阿彌陀經>에서도 “내가 성불하면 나의 불국토에는 여성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나의 불국토에 왕생하려고 원하는 여성은 모두 남성으로 변신할 것이다.”라는 서원이 실려 있다. 법화경 제바달다품 사가라 용녀의 변신은 더 잘 알려져 있는 내용이다. 마지막으로, 대승불교의 여성상은 <승만경>이나 <유마경>과 같은 경전에 나타난 여인즉신 성불설(女人卽身 成佛說)로 활짝 핀 꽃처럼 화려하다. 다소 긴 장면이지만, 이전까지의 애매한 여성관으로부터 확실한 반전을 보여주기 때문에 여기서 요약 소개할 생각이다. 유마거사의 방에서 유마와 보살, 성문제자들과의 문답을 듣던 천녀가 그들에게 꽃을 뿌리자, 보살들에게 뿌려진 꽃송이들은 몸에 붙지 않고 떨어졌으나 성문제자들에게 뿌려진 꽃은 그대로 몸에 붙어 있었다. 제자들은 신통력으로 그 꽃을 떨쳐버리고자 애를 썼으나 떨어지지 않았다. 그 때 천녀가 사리불에게 “왜 꽃을 떨치려 하느냐?”고 물었다. 사리불이 대답하기를, “꽃은 수행자에게 법답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고 답하였다. 그러자 천녀가 “그 꽃을 법답지 않은 것이라고 말하지 말라.”고 하였다. 왜냐면 그 꽃은 아무 분별을 내지 않는데 사리불 자신이 분별하는 마음을 내는 것이라고 하였다. 만약 분별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법다운 것이요 그러면 보살들처럼 꽃이 몸에 붙지 않고 떨어질 것이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사리불이 갑자기 천녀에게 물었다. “그대는 왜 여자의 몸을 바꾸지 않는가?” 천녀가 대답한다. “저는 지난 12년동안 여인의 상을 구해보았으나 알지 못했습니다. 바꾸어야 할 무엇이 있습니까? 요술사가 요술에 의해서 환녀(幻女)를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환녀에게 왜 여자의 몸을 바꾸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그 질문이 옳습니까?” 사리불이 대답한다. “아니다, 환녀에게는 정해진 상(相)이 없으므로 바꿀 필요가 없다.” 천녀가 다시 묻는다. “일체제법도 이와 같아서 정해진 특징(定相)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여자의 몸을 바꾸지 않느냐고 물으십니까?” 이어서 천녀는 신통력으로 사리불을 자신의 모습으로 자신을 사리불의 모습으로 바꾸고 나서는 사리불에게 왜 여자의 몸을 바꾸지 않느냐고 힐난한다. “사리불께서 여자가 아니면서도 여자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처럼, 모든 여자들도 비록 여자의 몸을 나투고 있지만 여자는 아닙니다. 그래서 붓다께서 일체제법은 남자도 여자도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신통력으로 사리불을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한 뒤, 천녀는 다시 사리불에게 묻는다. “여자의 몸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사리불이 답하기를, “여자의 몸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다." 이 경전은 여성의 몸 그대로 성불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만이 아니라, 붓다가 살아계실 때 상수제자로서 권위가 있고 특히 계율에서 빼어난 사리불 존자가 여성에게 여지없이 참패를 당하는 장면을 전하고 있다. 그런 설정을 통한 상징적 메시지는, 당시 소승적 수행의 열등함을 말하려는 대승경전 편찬자의 의도를 내포한 것 같다. 어쨌거나 천녀의 논리가 붓다의 가르침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라면 심각한 문제가 야기되겠지만, 교의에 합당한 저항으로서 오늘날에 이르도록 읽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동안 억압 왜곡되어 온 여성 이미지를 극적으로 해방시켜 주고도 남는 반전이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근거한 문헌들은 대개 여성수행자에 대한 남성의 시각과 남성의 입장을 상대적으로 기술한 것들이고, 정작 여성에 의한 자기 삶과 수행에 관한 주체적 고백을 크게 존중하지 않았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여성의 삶이 마치 주변적인 것으로 치부되는 점과 비슷한 양태이다. 그런 가운데 팔리어 경전 소부에 남녀 수행승들의 개인적 체험담을 집성한 <장로게>와 <장로니게>가 있는데, <장로니게>는 전체가 16장으로 모두 522편의 게송과 71명의 장로비구니의 이름이 보인다. 그 내용으로서 아이를 잃은 슬픔에 출가한 경우, 가난과 재난에서 출가한 경우, 애욕으로부터 출가한 경우, 남자들의 유혹을 이겨낸 수행담, 윤락녀 생활로부터 출가한 경우, 늙어가는 인생의 모습으로부터 출가한 경우 등이 있다. 2. 경험중심의 귀납적 추론 위에서는 경전의 여성관련 내용들이 상호간 괴리가 있음을 분명하게 보아왔다. 이제 여기서는 더 이상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궁금해 하지 않는다. 더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은, 오늘날의 불자 특히 여성불자들이 그와 같은 경전 내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떠한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있는지, 여성불자에게서 불교가 어떻게 살아있는 것인지, 하는 점이다. 여성불자들이 법문을 듣거나 교리 공부를 하면서 직ㆍ간접으로 예컨대 비구니 팔경계법이나 여인오장(성불불가)설ㆍ변성남자성불설ㆍ여인즉신성불설 등의 내용을 배울 때, 그 相違함을 어떻게 수용하며 그에 따른 여성 각자의 대응이 어떠한가를 알 필요가 있다. 궁극적인 성불에 관련된 여성관의 문제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 전반적인 생애과정에서, 우리 불교계 여성이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대우하는가에 대해서도 사실적으로 알 필요가 있다. 여성이 불교수행자로서의 목표와 자신의 일상적 경험들을 어떻게 주체적으로 다루고 있는지 여부도 알아볼 필요가 있다. 경전의 話者가 여성인 경우는 많지 않음을 보아오면서, 불교계 여성이 삶과 수행에서 자신이 주변적이거나 부차적인 것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촛점이며 우선적인 것임을 얼마나 인정하고 있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그러한 과제의 해답에 접근하는 경로로서 자주, 수많은 경험채집이 필요하다고 본다. 즉 여성불자들의 인식과 행동에 관한 실태조사를 하는 것이다. 일상생활이나 信行ㆍ생애목표ㆍ수행방법ㆍ사회적 관계 등에서 여성불자와 남성불자 사이에 과연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없는가? 우리 불교계 여성과 일반적인 한국의 여성 혹은 타종교계의 여성은 어떤 면에서 차이가 있는가, 없는가? 매우 포괄적이나마 아래와 같은 문제의 유형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얻어진 답들을 모아보면 불교가 실제로 여성 혹은 남성신자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지고,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그 내용을 거꾸로 유추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불교신자들이 주로 믿고 이해한 교리들은 무엇인가? 이해한 교리와 자기현실 관계에서, 교리를 어떻게 현실에 적용하는가? 여러 가지의 교리 가운데서도 여성관련 교설은 어떤 내용을 알고 있는가? 누구보다도 여성불자 자신이 배운 불교여성론은 무엇인가? 여성불자는 여성에 관한 가르침을 어떻게 믿고 있는가? 여성불자는 여성에 관한 가르침을 자기현실에서 어떻게 구현하는가? 여성불자는 여성주의적 일반론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여성불자는 여성주의 일반론과 불교가 일치한다고 보는가? 여성불자로서의 자기 삶에 대한 인식과 평가는 어떠한가? 이미 앞서도 말했듯이 위와 같은 연구과제들이 다루어진 것을 미처 접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다만 필자가 본고에 참고하기 위해서 실시한 아주 기초적인 설문조사- 여성불자의 정체성 탐구를 위한 예비조사-의 내용을 여기에 소개한다. 본 설문조사는 2002년 10월 20일과 21일에 걸쳐 과천과 수원의 두 개 사찰에서 총 100여명의 신도들에게 설문지를 배포하고 수합된 102개의 응답을 분석한 것이다. 그런데 응답자의 성비에 있어서 여성 100인에 남성 2인으로 너무 극단적인 분포차이가 있으므로 통계 처리 시에 남성 응답지는 아예 제외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순수히 여성만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가 된 것이다. 총 34개의 문항으로 인구사회학적 내용ㆍ교리공부에 관한 내용교리이해와 현실관계에 대한 내용 등으로 구성하였다. 그 분석 결과의 대강은 다음과 같다. 1. 응답자의 연령은 40대(43%)와 50대(40%)로서 중년층이 절대적이다. 2. 응답자의 대부분(72%)이 전업주부이다. 3. 응답자의 대부분이 사회 경제적으로 중위층(69%)과 하위층(23%)이라 느낀다. 4. 자주 동참하는 사찰의 수가 1개소(30%) 2개소(37%) 3개소(27%)라 답하여 두 곳 이상의 사찰을 다니는 불자가 70%에 달한다. 5. 보시금은 다양한 구성을 보이는데 가장 많은 비중(23%)은 연간 총액 20~40만원 대이다. 6. 즐겨 읽는 경전은 금강경(34%) 법화경(24%) 천수경(15%) 반야심경(15%) 등이다. 7. 자신이 설명할 수 있는 교리로서는 인과응보(18%) 참회(17%) 보시(16%) 등이다. 8. 장차 원하는 교리공부 방법으로서 불교특강(교양대학:53%) 정기법회(31%) 등이다. 9. 독실한 신자의 요건으로서 교리 이해(25%) 염불기도(정진:20%) 계율실천 (17%) 등이 있다. 10. 자신의 주요수행 방법은 염불기도(55%) 독경사경(18%) 참선(14%) 중생봉사(10%) 등이다. 11. 일일 공부(수행)시간은 대부분(70%)이 1시간 미만이다. 12. 업보설을 믿는가에 대해서는 매우 믿는다(35%) 믿는 편이다(59%). 13. 자신의 성불을 믿는가에 대해서 매우 믿는다(18%) 믿는 편이다(62%). 14. 여성의 성불을 믿는지에 대해서는 매우 믿는다(13%) 믿는 편이다(61%). 15. 남성의 수행이 여성보다 우월한가에 대해서 매우 그렇다(4%) 그런 편이다(52%). 16. 낙태에 관해서는 대부분(71%)이 긍정적인 응답이다. 17. 자신의 기도발원에서 주요내용은 가족친지의 행복(41%) 반성참회(34%) 깨달음(12%) 등이다. 18. 자신이 현실문제에 대해 적극적(38%) 소극적(53%)이다. 19. 불자로서의 자부심은 매우 높다(15%) 높은 편(52%) 낮은 편(22%)이다. 20. 자부심 근거로서 교리 이해(27%) 참선정진 이력(24%) 불자예절 능숙(18%) 계행(15%) 등이 있다. 21. 자신이 포교에 적극적(28%) 소극적(63%)이다. 22. 타종교인에 비해 부족한 점으로서 조직적 활동성(30%) 교리계율 실천성(18%) 포교전법 의지(16%) 사회봉사 책임성(16%) 사찰 종단 소속의식(13%)이라고 응답. 이상이 간추린 문항과 응답내용이었고, 좀더 자세한 결과는 첨부하는 도형으로 참고하기 바란다. 비록 예비조사의 성격이지만 이로써 어느 정도는 여성불자들의 자기현실에 관한 인식경향을 읽을 수가 있다고 본다. 또 장차는, 인식을 묻는 것만이 아니라 여성불자의 인식과 행동선택 사이의 因果와 그 樣態- 여성불자의 정체성-를 파악하기 위한 조사연구가 필요하다. 소위 여성신자들에게 실제적으로 불교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규명하는 일이다. 앞으로 종단이나 불교여성개발원 혹은 개인 연구자들이라도 좀더 심층적인 진단을 정기적으로 하면서 그 내용을 토대삼아 종책을 세우거나 불교운동의 방향을 조정해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 내용이 오늘의 한국불교를 설명하는 살아있는 자료가 됨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 마무리하는 말 본고의 목적은 불교여성개발원의 향후 사업을 위하여 무엇인가 좀더 실질적인 제안점을 찾아보려는 것이었다. 여성불자 정체성의 일부에서, 신자가 된다는 것이 자칫 교리믿음과 자기현실의 경계를 애매하게 하여,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행하고 있는 것의 차이조차 느끼지 못하게 호도하는 일은 없을까. 특히 여성관련 이념과 당면 현실은 너무나 오랜 세월 깊이 뿌리내린 생활문화 그 자체이므로 번번이 객관정신으로 돌아보기가 쉽지 않다. 그런 여성대중의 문제들에 관하여,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아울러 兩性共榮의 미래를 위하여 사업목표를 세운 불교여성개발원이라면 누구보다도 먼저 여성현실을 제대로 읽어내야 한다는 것은 필수조건이다. 다각적인 탐색이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불교여성개발원의 지속적인 연구발전이 있기를 기원하면서 마무리하고자 한다.
 

[제1차 세미나] ‘여성불자의 정체성에 관한 소고’에 대한 논평 
[불교여성개발원 제2차 정기 세미나] ‘깨달음을 향하여’: 여성불자의 수행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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