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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래로 남성의 지배하에 살아왔던 여성들은 자신의 문제들을 남성과의 관계 속에서 해결하려고 노력해 왔다. 근현대를 거쳐 여성은 여성의 문제를 남성관점이 아니라 여성적 관점과 여성의 시각으로 새롭게 해석하려는 노력을 시도해오고 있다.
이러한 관점의 전환과 발맞추어 종교단체 내에서도 종교를 여성의 시각에서 해석하기 시작하면서 여성종교, 여성신학 등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리고 최근 불교 내에서도 여성의 문제를 여성적인 시각에서 해결하려고 시도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바로 여성불교라는 전반적인 문제제기의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불교 내에서는 남성불교라는 이름을 따로이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여성불교라는 이름의 새로운 범주가 생기게 되었다. 그것은 아마 성차별의 측면에서 여성 자신의 평등권리를 찾으려는 노력에서 파생된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혹자는 부처님의 말씀을 빌어 남성불교, 여성불교라는 것은 단지 세속적 관점의 구분일 뿐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불교내에서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관점보다는 중생들의 고통과 그 해결그리고 분별심의 초월이라는 관점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불교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학문분야와 활동의 영역을 추구하려는 것은 부처님의 말씀을 더욱 더 본질적으로, 올바르게 이해하고 실천하려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모든 중생이 부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고 받아 지녀 실천수행한다면 그것이 바로 부처님의 제자로써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될 것이며, 그러한 관점에서 남녀문제의 논의는 차후로 미루고 여기서는 여성불교라는 이름으로 불교의 한 부분을 좀더 상세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불교내에서 여성불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게 되면 여성불교를 해석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로 정의할 수 있기 때문에 대답하기란 쉽지 않다.
우선 여성불교를 풀이하면 여성과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복합어의 분석방법에 따라 여성에 의한 불교, 여성을 위한 불교, 여성의 불교, 여성에 대한 불교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여성에 의한 불교와 여성의 불교라는 것은 여성이 주체자로 여성이 설한 것으로서, 그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부처님에 의해서가 아니라 여성이 부처님의 말씀을 대신하여 가르친 것을 내용으로 한 것을 말한다.
그리고 여성을 위한, 여성에 대한 불교라는 것은 여성을 내용으로 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말하는데 이것은 부처님께서 여성에 관하여 설한 내용이거나 부처님의 제자들이나 다른 종교인 그리고 천신, 마라 등 여러 중생이 설한 것을 포괄한다.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께서 설한 것은 경전에 전해졌지만 시대가 흐름에 따라 경전의 내용은 축소, 확대, 분석 등에 의해 내용이 다양해지고, 여성이 설한 것도 생기게 되었으며, 여성에 대해서 부처님의 제자들이나 그 외에 다른 사람들이 말했거나 저작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여성불교에 나타난 다양하고 복잡한 사상의 흐름을 형성하는 원인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여성불교에 대한 정의를 고려해 본다면 여성불교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는 여성에 대해서 설하거나 논하고 있는 부분을 누가 말하고 저작했는가에 대한 상세한 연구와 더불어 그 내용이 담고 있는 의미를 정확히 파악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원래 여성불교를 이해하기 위해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여성불교에 대한 고유한 주제나 학문적 체계는 없었다. 그리하여 여성불교에 대한 문제는 더욱이 여성문제와 관련하여 후기에 서술되어 온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여성불교를 이해하는 데에는 인도언어의 특징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대장경에 나타난 여성불교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불교적인 언어를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예를 들면 붓다(Buddha)와 보살(Bodhisattva) 등은 남성명사이고 여성명사는 인도불전에는 표현되어 있지 않다. 붓다와 보살이라는 용어가 성에 대한 구별이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왜 중성명사가 아닌 남성명사만 사용해야 했던가? 그것은 아마도 당시 남성위주의 언어사용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으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언어적으로 남성만이 존재하는 단어 즉, 부처님, 아라한, 보살, 브라만, 승가, 범천 등은 단어 자체의 변화보다는 앞에 특수하게 여성을 표시하는 단어를 보충해야 하는 문제를 낳게 되어 여부처님(Buddhā, 여아라한(Arahanī), 여보살(Bodhisattā), 여브라만(Brahmanī), 여성승가(Saṃghī), 여범천(Sakkī) 등의 단어들을 형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여성명사의 사용대신에 아라한 비구니는 아라한인 비구니로, 여부처님은 깨달은 여자로, 표현함으로서 형용사적인 언어를 보충하여 여성적 의미를 서술하는 언어학적인 관습을 낳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자권에서는 이와 달리 아라한녀, 보살녀, 용왕녀등 녀(女)자를 첨가하거나, 성을 붙여 복합어로써 사용하여 여성의 의미를 표시할 수 있었다. 사실상 인도언어에 따르면 여보살이나 보살녀라는 말은 생소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보살의 의미가 변천되어 우바이, 여신도를 보살로써 대중적인 의미로 우리는 칭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과거의 언어적 의미와 현대의 언어적 의미 차이를 재고해야 함을 보여주는 일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보살이라는 말은 사용하고 있지 않다.
<증지부>에
“비구들이여, 전도된 문구의 의미는 또한 잘못으로 이끈다. 비구들이여, 이 두 가지 법(전도된 문구와 이해되지 않는 의미)은 정법의 소멸과 파멸을 가져온다. … 비구들이여, 올바른 문구의 의미는 또한 잘 이해된다. 비구들이여 이 두 가지 법(잘 정돈된 문구와 이해되는 의미)은 정법을 유지하고, 소멸되지 않으며, 파멸을 가져오지 않는다.”
라고 말한 바와 같이 전도된 문구나 이해되지 않는 의미에 집착하여 여성불교를 바라보면 여성불교를 바르게 이해하는데 많은 오류를 범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성불교의 연구분야 내에서 우선 남성위주의 언어학적인 용어사용을 연구하는 작업과 아울러 여성불교의 바른 이해를 통해 정법을 유지하고 소멸되지 않도록 여성에 의한, 여성에 관한 경전을 이해하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여성에 관한 수많은 교설에 대해 잘못된 선입관을 배제해야 하고 편협한 관점보다는 총제적 이해의 관점으로 여성불교에 다가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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